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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기다리며

 

     작년 봄에 학교 뒷산을 일구고 학생들과 생태학습장을 만들어 서툰 솜씨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학생들은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열매를 거두는 과정에서 땅의 생명력을 손과 가슴을 통해 체득한 학습이었습니다.

    금년에도 학생들과 함께 땅을 일구면서 흙 냄새를 맡는 귀한 경험을 했습니다. 도시에서 자란 학생들이 보드라운 흙을 만지면서 “우와~!” 라는 소리를 연발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바로 이게 살아 있는 교육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근 십여 년 동안 교실에서 별 가치 없는 지식교육으로 머리와 가슴이 시멘트바닥처럼 굳어져 버린 학생들에게 이 짧은 시간동안 흙을 파고 땀방울을 흙에 쏟아 부은 경험은 자연의 경이로움과 머리와 가슴을 보드라운 흙처럼 일군 변화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흙은 일구었으나 땅이 메말라 씨앗을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 비를 기다려 하늘을 바라보았으나 한 달 동안 하늘은 비를 허락해 주지 않았습니다. 준비해 둔 씨앗도 저의 책상서랍에서 비 오기만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비가 와야 그들은 땅에 들어가 새 생명으로 잉태될 것이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땅을 일구는 것은 생명을 잉태할 준비 작업입니다. 흔히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하나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생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자연은 보호의 대상도 순화의 대상도 아닙니다. 자연은 인간을 보호할 수 있지만, 인간은 자연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자연을 보호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인간들이 모태에서 태어났듯이, 모든 씨앗들과 나무와 풀들이 흙에서 태어났으니 땅은 씨앗들의 모태입니다. 우리의 몸도 흙에서 나와 언젠가는 흙으로 되돌아 갈 것입니다. 그래서 身土不二란 말이 생겨 난 듯합니다. 흙을 일구고 어루만짐은 흙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 사랑으로 씨앗들은 뿌려져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 열매를 맺고 그 열매로 우리는 연명하고 우리의 씨앗인 자녀들이 배태하고 키워질 것입니다.

     그렇게 기다렸던 비를 하늘이 밤새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늘이 우리들에게 베푼 은총입니다. 기다린 대지는 비를 반가이 맞아들입니다. 마른땅을 적시는 소리가 들립니다. 비는 방울방울 대지의 피가 되어 대지의 혈관 속으로 스며들어 땅이 새로 소생시키고 있습니다. 이 비가 그치면 씨앗을 땅에 넣어 땅이 잉태하면 풍성한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출처] 김동일 (2001). 손톱 밑의 행복. 서울: 양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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